[TE머묾] AI 시대에, 혐오 직업 보유자로 버티기

[TE머묾] AI 시대에, 혐오 직업 보유자로 버티기
Photo by engin akyurt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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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Pick
- 텍스트로 둘러싸인 더테크엣지 기자의 현장
- 인공지능 덕 좀 보려했지만, 퇴근 시간은 제자리걸음
- 인공지능과의 경쟁에서 기자가 앞서는 건 무엇일까

며칠 어지럼증이 심해졌다. 눈앞이 핑 돈다는 게 뭔지 살면서 처음 경험했다. 그건 비유가 아니었다. 사실에 충실한 표현이었다. 이미 수백 년 전 폐기된 천동설이 아직 살아남아 악다구니를 쓰는 듯 나는 가만히 있는데 내 주변의 모든 것이 뱅그르르 돌았다. 좀 견디면 낫겠지 싶어 버티다, 이제 막 뜀박질 배우는 막내 손 잡고 있다가 같이 넘어져 뒹굴고서야 병원을 찾았다.

의사는 비타민D 부족을 의심했다. 피 검사 결과가 나오기 전 시점이라 ‘의심’이지, 말투는 확신에 찼다. 너무 집에만 계시지 말고 바깥바람도 쐬고 좀 그러세요, 라고 타이르듯 말했다. 창피했다. 정말 바깥에 한 발짝도 나가지 않는 내 생활 패턴을 들킨 것 같아서였다. 게다가 내 명함에는 ‘기자’라는 글자가 박혀 있지 않은가. 발로 뛰며 돌아다니는 게 상징이자 미덕인 직업을 가진 놈이 비타민D 결핍이라니.

얼마 전 오랜만에 만난 아버지께 장난스레 물었던 적이 있다. ‘내가 기자 될 줄 알았어요?’ 아버지는 대번에 코웃음을 치셨다. ‘니 까짓게 기자는 무슨 기자. 기자는 여기 저기 돌아다니면서 사람도 만나고 들쑤시고 다녀야 기자지. 너 같이 시골 방구석에 앉아 있는 게 무슨 기자냐.’ 두 남정네 아무 말 없이 앉아 있는 게 어색해 아무렇게 던진 농 하나에 뭔 비수를 이리도 날카롭게 후비시나 생각이 들면서도 딱히 대꾸할 말은 없었다. 그런 기자가 멋진 건 사실이니까.

아닌 게 아니라 나는 멋대가리 없는 기자다. Press 명찰 폼 나게 부착한 채 정부 기관이나 주요 기업을 출입하는 것도 아니고, 시대정신 가득한 사건 현장을 카메라 들고 찾아 나서지도 않는다. 나의 출입처는 컴퓨터와 모바일 기계 안쪽에(혹은 보기에 따라 바깥쪽에) 자리한 ‘사이버 공간’이다. 아침에 일어나 잠옷차림 그대로 책상에 가 컴퓨터 켜면 난 곧바로 현장에 입장한다. 명찰도 없고, 머리는 새 둥지를 닮았다.

그렇다고 기계어를 친숙하게 구사해 컴퓨터를 구슬림으로써 보통 사람들이 알 수 없는 비밀들을 캐내는 것도 아니다. 내 기사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해커들처럼 사이버 공간의 어두운 공간들을 비집고 들어가 나만의 수사를 하는 것도 아니다. (그랬다면 아버지 말에 반박할 수 있었을 텐데!) 그런 일을 이미 해버린 전문가들이 친숙한 자연어로 작성한 소셜미디어 글이나 블로그 게시물이나 보고서를 수집해 읽는 것이 전부다. 생생한 원료는 구경도 못하고, 남이 만든 가공식품만 잔뜩 먹는 것과 비슷하다.

그러니 매트릭스의 네오도 아닌데, 나의 현장은 온통 글자다. 비타민 하나 제공 않는 글자들 속에 파묻혀 하루를 보내는 게 내 기자질의 실체다. 남들이 잘 읽지 않을 법한 텍스트를 찾아 끝없이 읽다가 밥 먹고 다시 읽다가 잠든다. 겉으로는 타자 소리만 나도록 고요하지만, 내 머릿속은 천동설이 진리인 공간이 된다. 그 무수한 텍스트 속에 그날 내가 써야 할 단독기사가 있고, 스트레이트가 있고, 기자수첩이 있다.

이런 나에게 인공지능은 매우 실질적인 위협이다. 그 녀석은 나보다 수천 배 빨리 읽고, 수만 배 빨리 요약한다. 나도 필요에 따라 도움을 받아 읽어야 할 텍스트의 양을 획기적으로 줄이기도 한다. 여기에 맛 들려 한 동안 ‘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을 먼저 만끽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아무리 해도 퇴근시간을 당길 수가 없었다. 분명히 인공지능이 필요한 보고서를 줄여 핵심만 간단히 요약해줬는데, 그래서 그 핵심을 간편히 인용해 기사도 써냈는데, 왜 나는 여전히 늦게 퇴근하는가. 프롬프트를 잘 사용하지 못해서인가. 기계어를 배워뒀어야 했나.

내 ‘의심’이 문제였다. 처음에는 인공지능이 요약해준 텍스트가 맞는지 틀린지 의심이 들어 요약을 시켜놓고도 내가 다시 읽었다. 머릿속으로 ‘아, 의심이 가니까 다시 읽어야지’라고 의식하면서 다시 읽는 게 아니었다. 나도 모르게 요약된 내용과 원문 내용을 비교하기 위해 눈으로 쓱 검토하고 있었는데, 그게 정독과 크게 다름이 없었다. 내 의식 속에서 나는 그저 검토만 했을 뿐이었는데, 사실은 내가 하던 일을 그대로 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유별난 직업윤리를 가지고 있어서 그런 것도 아니고(오히려 난 비윤리적인 놈에 가깝다), 의심이 심한 성격(난 의심이 귀찮다)이어서도 아니다. 활자중독은 더더욱 아니다(난 무식하다). 요약문과 원문을 비교하면 할수록 인공지능의 요약 기능은 매우 뛰어남에도 ‘기자가 찾아야 할 정보’는 빠져있는 걸 많이 경험했기 때문이다. 물론 매번 그런 건 아니고, 오히려 인공지능이 핵심을 더 정확히 짚어줄 때도 많다. 다만 그 ‘정확성’과 ‘내가 찾아내야 할 것’이 일치하지 않을 때가 더 많았다는 것이다.

이 불일치는 매번, 건마다 다른 양상으로 나타난다. 어떤 날은 요약문에는 빠져 있는, 빠져도 대세에 영향이 없는 원문 문장에 이상하게 꽂혀 조사를 이어가다 단독기사를 발굴하기도 한다. 요약문에는 간과되어 있고, 원문에만 희미하게 느껴지는 저자의 의도나 맥락에 착안해 기자수첩이나 칼럼을 작성하기도 한다. 요약문의 묘한 위화감 때문에 원문을 읽어보다가 다른 방향으로의 사건 정리가 가능하다는 걸 알아채기도 하고, 이를 바탕으로 기사를 쓰면 아주 가끔 ‘독특한 시각의 기사 잘 읽었다’는 독자 메일을 받기도 한다(칭찬일 거다, 아마).

쓰면서 정리하자면, AI 요약문이 너무 정직하고 너무 완벽해, 나 같이 좀 삐뚤어진 시각을 가진 자들에겐 밋밋해 보인달까. 하긴 기자들 모아두면 약속한 듯 성격 괴팍하고 모난, 사회 부적응자 같은 사람들로만 우글우글거리는데, 나도 그 분위기에 물든 걸까. 그런 면에서는 내가 비록 발로 현장을 뛰어다니는 멋진 기자가 아니더라도, 적어도 ‘가짜 기자’ 신세는 면할 정도는 되지 않을까. 이걸 아버지께 자랑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그래도 성격 더러워서 진짜 기자랑 비슷하긴 해요’라고.

어느 새 이런 경험 자체가 나의 새로운 현장이 되고 있다. 본의 아니게 인공지능의 아직 미흡한 점들을 찾을 때면 남몰래 박수치는 나의 모습이 시골 방구석에서 점점 빈도를 높이고 있는 것이다. 얌전하고 충성스런 기계를 헐뜯다니, 옹졸 옹졸 이런 옹졸이가 있나. 이러다 어느 날 고도로 발전한 인공지능이 100가지 시선을 담아 다양한 요약문을 내놓는다면 난 뭘 먹고 살아야 할까. 난 101번째 삐딱한 시선을 가지고 의기양양 ‘기자’ 명찰을 유지할 수 있을까. 불안하기도 하고 자신 있기도 한 걸 보니 아직 어지럼증이 멎지 않은 듯하다.🆃🆃🅔

by 문가용 기자(anotherphase@thetechedge.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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