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머묾] 쿠팡 새벽 배송 논란, 테크 관점에서 바라보기
- 쿠팡의 새벽 보상에 의존하는 사람들 많아
- 무리한 근무 일정으로 인한 사고도 무시하기 힘들어
- 테크 분야의 끝없는 인프라 논란, 혹시 선례 될까
쿠팡 새벽 배송 논란이 한창이다. 저녁에 주문하더라도 다음 날 새벽에 물건이 도착하는, 설명만 들어도 무리한 배송 시스템이 근로자들의 목숨을 위협하고, 또 실제 적잖이 앗아간다고 하는데, 문제는 그 당사자인 배달 인력들이 새벽 배송 때문에 수익을 얻고, 따라서 새벽 배송이라는 걸 중단할 마음이 없다는 거다. 남들 자는 밤중에 열심히 살면서, 몸에 무리가 간다 하더라도 좀 더 윤택한 삶을 사는 편이 좋다는 당사자들의 주장 앞에서, 그러한 근로 환경은 위험하니 중단시켜야 한다는 제3자의 말은 설득력을 갖기 힘들어 보인다.
새벽 배송은 이미 ‘인프라’?
새벽 배송이 유지되어야 한다는 쪽은 “새벽 배송이 없다면 기존 생활 패턴이 심각하게 침해되는 사람들이 있다”고 말한다. 새벽 배송이 없어지면 배달 기사들만 수익의 창구 하나를 잃는 게 아니라, 그 새벽 배송 때문에 생계를 이어갈 수 있는 수많은 사용자들 역시 적잖은 피해를 본다는 거다. 이른 아침부터 물건을 가져다 주는 서비스는, 이제 서비스 이상의 무언가가 되었다는 주장이다. 하긴, 이게 없으면 삶의 패턴이 어그러져 성립 여부마저 불투명해진다는데 ‘서비스’라는 단어는 그 무게가 지나치게 가볍긴 하다. 여기서 우리가 사용해야 할 단어는 ‘인프라’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그렇다. 새벽 배송은 이미 수많은 사람들에게 있어 ‘인프라’다. 수도나 하수 시설처럼, 도시가스처럼, 대중교통처럼, 전력망처럼, 인류가 발전을 집적해 오면서 자연스럽게 삶의 중대한 부분으로서 자리를 잡은 것 말이다. 너무 중대해 이것들 없는 삶을 우리는 더 이상 상상할 수가 없다. 우리가 한적한 시골에서의 노후를 꿈 꾸면서도 정작 기회가 왔을 때 도시를 선뜻 떠날 수 없게 하는 것,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을 가장 뚜렷하게 구분짓는 것, 중국이 일대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여러 나라에 미끼로 내던지는 것, 바로 ‘인프라’ 아니던가. 우리나라에서는 새벽 배송이 수도, 전력, 교통과 맞먹는 중요한 것이 되어버린 모양이다.
무언가가 ‘인프라’로 자리를 잡았다면(혹은 빠르게 잡아가는 중이라면), 사회는 더 이상 그것의 존폐를 논할 수 없다. 감전 사고 비율이 높아진다고 했을 때, 전력망을 폐쇄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면, 누가 박수를 칠까? 우리나라를 비롯해 수많은 나라들이 110V를 쓰다가 경제성과 안전성 측면에서 장점을 더 많이 가진 220V로 승압했는데, 그 과정에서 전력 인프라를 폐쇄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나온 적이 없다. 하수의 불완전한 처리로 환경이 오염되니 하수 인프라를 삭제하자는 주장도 들어본 적 없다. 교통사고 끊이지 않는다고 전국적인 비상 폐차 명령이 선포되는 것 아니잖는가. 그러니 무리한 배달 서비스로 인해 근로자들의 생명이 위협을 받지만, 새벽 배송이 이미 인프라의 지위까지 얻은 마당에 그것을 없애자고 한다면 반발이 나올 수밖에 없다.
인프라는 수정과 보완의 대상이다. 사실 처음 새벽 배송 문제를 제기한 측에서도 ‘폐지’를 주장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현행 제도를 조금 손봄으로써, 라이더들 및 서비스 이용자들의 수익과 생계를 위협하지 않으면서 안전도 강화할 수 있는 방법을 찾자며 이를 공론화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기에 여러 정치적 프레이밍과 논란까지 끼어들여 논의가 다소 지저분하게 이어지고 있는데, 본지에서는 그런 이야기 다루지 않겠다.)
테크 분야에서의 인프라 홍역
IT 기술과 서비스도 이미 적잖은 나라에서 ‘인프라’나 다름이 없다. 스마트폰 없는 세상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말도 사실은 ‘스마트폰 기술이 우리 삶의 인프라가 됐다’는 걸 실토하는 것이나 다름 없다. 그 비싸고 귀했던 노트북 컴퓨터가, 이제 대학 강의실 책상마다 보이는 소모품이 된 것도 테크 기술의 인프라화를 보여준다. 어르신들 현혹하는 가짜뉴스 유튜브 채널들의 존재도, 단순 입력 장치였을 뿐인 키보드가 그저 ‘눌리는 느낌’에 따라 값비싼 사치품이 되기도 하고, 심지어 그런 키보드 타건감을 중심으로 동호회들까지 여기 저기 만들어지는 것도, 어느 덧 ‘IT가 곧 인프라인 시대’가 왔음을 증명한다.
다만 ‘인프라’라는 게 기사 작위처럼 으리으리하게 수여되는 타이틀은 아니다. 그 누구도 수도꼭지 앞에 서서 큰 칼을 여기 저기 차례로 가져다 대면서 ‘이제부터 이것을 상수도 인프라로 명명하노라’라고 하며 휘장을 채워주지 않는다. 가끔 덩치 큰 인프라가 들어서면 고속도로 개통식 같은 걸 하긴 하지만, 그건 예외적인 사례일 뿐이다. 앞에서 말했다시피 인프라는 인류의 발전이 집적되면서, 그 발전에 따라 삶이 차근차근 변하면서, 자연스럽게(어느 새) 기저에 깔리는 것이 대부분이다. 테크가 우리의 인프라가 되었음에도 아무도 그 사실을 입 밖으로 내지 않은 것은 이 때문이다.
딱 한 번 테크가 인프라로서의 ‘기사 작위’를 받은 적이 있다. 소셜미디어라는 21세기 새로운 소통의 방식이 ‘사회 인프라로서 보호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공공연하게 나왔을 때이다. 2016년 미국 대선 직후, 소셜미디어를 통해 러시아의 해커들이 여론을 조작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불거진 목소리로, 그전까지 소셜미디어를 하나의 오락용 플랫폼으로 인지하고 있던 대중과 전문가들은 ‘이것이 사회 기반 시설로 작용하고 있다’는 걸 그 때 처음 깨달았다. 거의 모든 기업들이 이미 소셜미디어에서 광고하고, 소셜미디어에서 고객들과 스킨십을 갖고 있었으면서도 말이다.
물론 ‘소셜미디어도 사회 인프라다’라는 주장이 공식 채택되어 이제 정부들이 소셜미디어를 정식 사회 인프라로 분류하고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선포식만 없었을 뿐, 소셜미디어를 향한 경계의 눈빛은 그 주장 이후 삼엄해졌다. 유럽연합은 소셜미디어 제공 업체들을 노골적으로 견제하기 시작했고, 대중들도 소셜미디어에서 가짜뉴스가 폭발적으로 퍼진다는 사실을 최소 한 번은 들어봤다. 소셜미디어를 만들어 제공하고 있는 업체들도 여론 조작을 방어하는 안전 장치들을 도입하기 시작했다. 정부와 민간이 소셜미디어를 감시하고 보완한 것으로, 이 작업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그 와중에 소셜미디어를 다 없애자는 주장이 없었던 건, 그것이 민간 기업의 고유 재산이라서만은 아니었다. 인프라임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인프라가 된 소셜미디어를 없애자고 주장했을 때 어떤 결과가 벌어지는지도 우리는 알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 1기 시절이었던 2019년 미국 정부는 중국의 소셜미디어인 틱톡을 강력하게 헤집었다. 국가 안보를 이유로 틱톡을 미국 땅에서 추방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틱톡을 미국 기업에 팔면, 그때는 틱톡을 신뢰할 수 있을 거라고 모기업인 바이트댄스를 압박했다. 하지만 틱톡은 이미 미국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소셜미디어였다. 굳건한 인프라였다. 바이트댄스는 미국 정부의 제안(협박)을 차분히 거절했는데, 오히려 미국 국민들이 강력히 반발했다. 트럼프 1기가 끝나고, 2기가 되어서도 여전히 틱톡은 미국에서 살아 있다. 견제가 다 없어진 건 아니지만, 이미 인프라가 된 지 오래기 때문에 사용자들의 저항이 거셌고, 그것에 힘입어 생존에 성공한 것이다.
테크 분야에서의 선례, 사회 논의에도 적용되기를
소셜미디어의 사례를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건 두 가지다. 인프라로서 자리를 이미 잡아버린 건 더 이상 없앨 수 없다는 것, 그리고 자리를 잡은 인프라라고 하더라도 완전하지는 않으며 고쳐 써야 한다는 것. 새벽 배송도 이미 수많은 사람들에게는 이미 인프라이므로 우리는 이걸 다듬는 데 집중해야 한다.
다행히 고칠 점들이 벌써부터 지적되고 있다. 라이더들을 쉬지 못하게 만드는, 이른 바 ‘쿠팡 클렌징’ 제도를 손보자는 목소리가 특히 크다. 배달 실적 미달 시 배달 구역을 쿠팡에서 다른 라이더에게 넘겨주거나 계약 해지하는 것으로, ‘쉬면 잘린다’는 뉘앙스가 다분하다. ‘고용 불안’에 시달리도록 가스라이팅 한 것과 같다. 여기에 쫓기는 배달 기사들은 당연히 스스로를 채찍질할 수밖에 없다. 몸 좀 상하는 게 실직하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테크 분야에서도 이런 ‘속도 중심’ 문화를 성토하는 목소리가 꾸준히 나오고 있다. 어떻게든 출시 일정을 당기려고 하니 소프트웨어들에 자꾸만 구멍이 생긴다는 것이다. 그런 불완전한 제품을 판매하고서, 나중에 패치로 구멍을 메우는 식으로 보완하는데, 그 사이에 많은 해킹 공격이 허용된다. 그럼에도 개발사들은 ‘패치를 내놔도 사용자들이 적용하지 않으니 문제’라는 입장을 고수한다. 애초에 덜 완성된 걸로 돈을 받는다는 게 문제라는 자각은 잘 보이지 않는다. 사실, 그 대단한 애플마저도 부랴부랴 신제품 출시부터 하고 일부 기능은 나중에 업데이트로 넣어주는 상황이니 속도 중심 개발 문화는 쉬이 사라지지 않을 전망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그런 경쟁 체제와 속도 중시 풍조마저 이미 우리의 ‘인프라’가 되었는데. 그러니 없애지는 못하고 보완만 궁리해야 하는데. 그래서 소프트웨어 물자표 제도를 정착시켜 현대 소프트웨어 구성 요소들을 다 같이 감시하고 확인하자거나, 해킹 공격에 대한 피해를 소프트웨어 개발사들도 일부 지게 한다는 식의 대안들이 나오는 중이다. 소프트웨어의 구멍들(즉 취약점들)이 의미 있게 줄어들 때까지 이런 ‘보완을 위한 제안’은 끊임없이 나올 것이다. 획기적인 해결책이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문제가 제기되었고, 그것에 대해 적잖은 사람들이 공감해주고 있으며, 느리더라도 인식이 조금씩 바뀌고 있다는 것으로도 희망을 갖기에 충분하다.
쿠팡 새벽 배송 논란이 일종의 정치판 프레이밍으로 흘러가는 게 안타까운 건, 그런 편 가르기식 싸움 속에 보완의 논의가 희미해져 가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정치 세력이 어떤 의도로 이 민감한 주제를 건드렸든 간에, 우리에게 주어진 건 ‘새벽 배송이라는 서비스가 어느 덧 우리 삶의 인프라가 되었고, 그러므로 이제 와 없앨 수도 없고 문제가 없는 것도 아니니, 더 안전하고 가치 있게 활용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과제다. 그 배후의 음모와 진의가 무엇이든, 종국에 우리가 더 나은 인프라를 확보하게 된다면 나쁠 게 없지 않을까.
by 문가용 기자(anotherphase@thetechedge.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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