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머묾] 재난이 내 취미 안으로 들어올 때

[TE머묾] 재난이 내 취미 안으로 들어올 때
Photo by Muhammad Yusuf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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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Pick
- 재난 문자들이 바삐 울리는 시기
- 앞으로 데이터 도난이 아니라 데이터 소멸을 더 걱정해야 할지도
- 보안, 사용자 마음 얻는 데 더욱 집중해야

LG폰을 좋아했었다. 특히 쿼드덱이 달려 있던 모델들을 음악 감상용으로 애용했었고, 지금도 그런 목적의 장비가 하나 필요해지면 중고 시장에서 오래된 LG폰을 저렴하게 들인다. 음악 감상은 취미 중에도 매우 비싼 편에 속하는지라, 애초에 필자가 정한 상한선이 딱 거기까지다. 중고 LG폰. 지금도 V20으로 음악을 들으면서 이 글을 작성 중에 있다.

하지만 LG폰은 MP3가 아니다. 전화기다. 그래서 이미 단종된 지 오래된 모델들이더라도, 내가 그것을 전화기로써 사용하지 않더라도, 긴급 재난 알림 메시지들이 들어온다. 국가가 국민들에게 재난에 대해 알리고자 할 때, 아무것도 막을 수 없다. 핸드폰으로 무슨 작업을 하고 있든, 어떤 옵션을 어떻게 활성화하고 있든, 이 알림 문자들은 모든 것을 멈추고 가장 위에 떠 사용자들이 읽을 수밖에 없게 한다. 정말 급한 내용이라면 삑삑 경보음까지 시끄럽게 난다. 그전까지 했던 모든 작업들만 고요해진다.

과학자들 사이에서 합의된 의견에 따르면 앞으로 우리에게는 더 많은 경보음이 울릴 일만 남은 듯하다. 이번 여름이 앞으로 남아 있는 모든 여름 중 가장 시원하고 가장 온순할 거라니까 말이다. 여름의 재앙이 차고 넘쳐 다른 계절들로까지 전달될 것이라니, ‘재난의 일상화’가 정말 코앞에 있는 듯하다. 아니, 어쩌면 이미 시작됐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재난 메시지를 받을 수 있는 중고폰으로 음악 듣는 취미는 사라져야 할 것이다. 한 곡도 못 듣고 번번이 끊기기만 하는데, 어찌하랴.

소비자들의 IT 장비 구매 패턴도 바뀔 가능성이 높다. 음악 감상용 LG폰들은 중고 시장에서 더 낮은 가격에 거래되거나 아예 무료 나눔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음악 감상자들의 사랑을 받던 LG의 진정한 스마트폰 사업 철수는 그때부터일지도 모르겠다. 시도 때도 없이 비가 내렸다가 변덕스러운 뙤약볕이 금방 정수리를 익히는 시대라면, 지금 특수 산업 현장에서나 사용되는, ‘러기드(rugged)’ 장비들이 일상에서도 사용되어야 할 것이다. 튼튼한 대신 무거운 러기드가 트렌드가 될지 모른다니, 상상만으로 모두의 손목 건강이 염려된다.

또, 지옥 같은 기온을 이길 수 있으려면 장비들의 발열 관리가 제일 중요한 ‘셀링포인트’가 될 테고, 그렇다면 하드웨어 제조사들은 칩셋에 쓰로틀링을 엄격하게 걸 것이다. 아예 발열 덜한 것이 증명된 구형 칩셋들이 시장에서 되살아날 수도 있다. 거리에서 핸드폰으로 초고사양 게임을 즐길 수 있는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아예 더 나아가 전자잉크 패널이 대세가 되는 미래도 있을 수 있다.

그런 때라면 IT와 보안을 담당하는 사람들은 뭘 걱정해야 할까? 지금은 ‘마이너’에 속하는 장비 고장이나 분실이 아닐까 한다. 업무용 스마트폰을 햇볕에 잠깐 내놨더니 가열되다 못해 타버린다거나(혹은 초저기온에 얼어붙는다거나), 예고 없는 폭우 속에 중요한 노트북이 분실된다거나 하는 일들이 더 높은 빈도로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지구 평균 온도가 올라가 대기 상태가 불안해진다면, 지금의 무선 통신 기술이 심각한 장애를 일으키는 것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사물인터넷 장비들의 ‘always online’이라는 특성이 폐기되어야 할 수 있다. 

스마트폰, 태블릿, 노트북 등 IT 장비들이 저발열(즉, 저성능) 칩셋들을 탑재하면, 사용자들이 보안 솔루션에 적응할 수 있을까? 컴퓨터 백신은 이미 수십 년 전부터 존재해 왔지만 사용자들의 간택을 받지는 못했다. 컴퓨터 게임을 돌린다던가, 영상 제작을 하는 등 고사양 작업을 할 때 컴퓨터가 느려지기라도 하면 제일 먼저 찾아 끄는 게 바로 백신이기 때문이다. 하물며, 현대의 광속 반응 장비들에 익숙해져 있다가 서서히 느린 장비로 갈아타야 한다면, 사용자들의 ‘몰래 백신 제거’나 ‘백신 비활성화’ 움직임은 지금보다 더 거세질 것이 분명하다. 보안 담당자에게는 악몽 같은 소리겠다.

기기들이 기후를 견디지 못하게 된다면, IT와 보안을 담당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건 데이터 백업이 될 것이다. 툭하면 고장 나는 장비들에 데이터를 저장해 놓고 안심할 수 없을 테다. 하지만 지금도 랜섬웨어에 대응하려면 백업을 미리 해두라고 그렇게 강조하는데도 잘 되지 않는데, 그 때라고 괜찮을까? 이상 기후 때문에 장비들이 버티질 못하니 백업을 미리 해두라 해도, 안 할 사람은 안 할 것이다. 지금은 데이터 탈취나 도용으로부터의 안전책을 강구하는 게 보안인데, 그때가 되면 데이터 파괴와 소멸로부터의 구제 방법을 고민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백업이라는 답이 있지만 사용하지 않을 확률이 높아 보이니까.

이 모든 일들은 필자의 상상에 불과하다. 하지만 기후가 갈수록 극단적으로 이상해져 가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 때문에 벌써부터 대형 데이터센터 운영 기업들은 산불, 물난리, 산사태, 극심한 추위와 더위, 화산 폭발, 지진 등 상상 가능한 모든 재난들로부터 가장 안전한 곳을 찾아 그 중요한 서버들을 설치해 관리하고 있다. 재난으로부터 데이터를 지키는 것이 벌써부터 누군가의 과업인 셈이다. 해커도 골치 아픈데, 기후라는 더 거대한 위협이 다가오고 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기후학, 더 나아가 지구과학도 이제 보안 분야로 편입해 들어온다.

농담 같지만, 농담 아니다. 데이터를 지키는 게 책임이고 업무의 목적인 사람들에게 있어 이상 기후만큼 거대한 적은 없을 예정이라고 믿고 있다. 거기에 비하면 현대 해커들이라는 존재는 준비운동에 불과했을 수도 있다. 그들은, 일부 독한 놈들 빼놓고는, 적어도 데이터를 살려는 두니까. 이상 기후에 그런 자비를 기대하기는 힘들다. 몇 십 년 쌓아 올린 우리 회사의 지적재산과, 수많은 충성 고객들이 제공한 개인정보들과, 원활한 사업 운영을 위한 파트너사들과의 정보 교환 체제가 한순간에 사라진다면, 기업은 존속할 수 있을까? 이런 거대한 질문이 IT 및 보안 담당자들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들이 있다. ‘안부 인사’다. 중부 지방이 역대급 폭우에 휩쓸렸다는 소식이 식당 TV 화면에 속보로 뜨고, 동시에 재난 문자가 내 전화기 스피커로 요란한 소리를 내기 시작하면, ‘아차, 그쪽에 파견 나간 팀장이 노트북 잘 간수해야 하는데...’라고 생각해야 한다. 이는 재난이 일상화가 된 때 IT/보안 담당자들의 기본자세가 될 것이다. 그렇다고 전화해서 ‘팀장님, 노트북에 중요한 데이터 있으니까 꼭 붙드십시오!’라고 말하는 건 하수다. 사람의 안부가 먼저 궁금해야 한다. ‘팀장님, 거기 괜찮으십니까?’가 퍼뜩 나와야 한다. 그리고 거기서 일단 끝내는 게 고수다.

사람이 중요하다는 윤리적 가치관을 강조하려는 게 아니다. 러기드 장비를 끙끙 이고 다녀야 하는 사용자들, 온갖 풍파나 더위를 뚫고 파견 현장에 나가야만 하는 임직원들에게, 그것도 뉴스니 핸드폰이니 큰일 났다고 소리만 빽빽 질러 평안이라는 것이 과거 유물이 되어가는 미래에,  데이터의 안전만 강조했다가는 마음을 얻지 못한다. 정보 보안은 그 태생에서부터 가장 큰 재앙을 ‘사용자의 외면’으로 여겨 왔다는 걸, 재난 문자들과 함께 떠올려야 한다. 반대로, 보안에 마음을 둔 사람들이 그 무엇보다 강력한 자산이 된다는 것도 우리가 상기해야 할 보상이다.

비가 한반도를 한바탕 할퀴고 지나갔다. IT와 보안 담당자들에게는 마음 얻을 기회다. 잠깐 음악을 끄고, 바쁘게 스크롤되던 태블릿 화면도 잠깐 덮어두고, 전화를 걸자. 고수처럼 안부를 묻고, 거기서 끝내자. 사람이 무사하다면, 대부분 데이터도 그러했을 것이다.

*이 글은 필자의 브런치 계정(brunch.co.kr/anotherphase)에도 게시됩니다. 거기서 더 많은 소통을 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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