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신기술의 범람 앞에서 정신을 날카롭게
![[기자수첩] 신기술의 범람 앞에서 정신을 날카롭게](/content/images/size/w1200/2025/06/----------------------------.png)
10년 넘게 한 기업에 있다가 자유의 몸이 되었다. 강산이 변하기에 충분한 시간, 과연 세상은 달라졌다. 번역과 글쓰기로 먹고사는 입장에서 가장 많이 체감되는 건 영상과 인공지능의 범람이다. 번역가를 구하는 공고들은 거의 전부 ‘영상 번역’으로 바뀌었고, 인공지능을 활용한 콘텐츠 제작을 지향한다는 회사들도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직업 포털 사이트에서만 이 두 가지를 맞닥트린 건 아니었다.
인공지능
“아, 그거 인공지능이 퍼트린 거 같은데... 사실이 아니에요. 오늘도 이런 문의 전화가 폭주하네요.” 자유로워진 대신 한 푼 한 푼이 아쉬워진 입장이 되어 자동차세 감면에 대해 알아보다가 다자녀 혜택 관련 기사들을 보고 연락을 했더니 담당자가 한 말이다. 자동차세는 아이를 많이 낳았다고 줄어들지 않는 게 현행법이라고 담당자는 분명히 말했다. 인공지능의 ‘거짓 생성’ 혹은 ‘무조건 긍정하기’와 같은 부작용을 알고 있어 납득이 갔다. 하지만 지금도 쉽게 찾을 수 있는 ‘다자녀 자동차세 감면’ 검색결과는 그렇지 않았다. 이 많은 기사와 블로그 글들이 허위 정보라니.
인공지능이 대세다.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인공지능에 질문을 던지고 나온 답을 공유하는 방식의 글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고, 해외나 국내나 기자들도 인공지능에 점점 더 많이 의존해 가는 눈치다. 주식 시장에서도 인공지능 관련 분야의 강세는 뚜렷하고, ‘거인’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던 인터넷 검색엔진 시장의 플레이어들이 인공지능을 차세대 기술로 점찍고 거센 투자를 이어가는 중이다. 더 이상 인공지능 이전의 시대로 돌아갈 수 없다는 예견들이 기정사실화 되고 있기도 하다.
그에 따라 단점이랄까, 부작용과 같은 현상들도 적잖이 나오고 있다. 인공지능이 만들어낸 가짜 영상이나 이미지 혹은 음성 콘텐츠(딥페이크)가 문제가 된 건 이미 수년 전부터다. 위 자동차세 사례에서처럼 가짜 정보가 진짜인 양 퍼지는 것도 처음이 아니다. 인공지능이 사용하는 영어가 특정 지역에서 사용되는 영어를 많이 닮아가고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고(큰 테크 기업들이 해당 지역에 외주를 주는 사례가 많아져 생기는 현상이라고 한다), 지브리 화풍 이미지 생성 기능을 통해 다시 한번 대두된 저작권 문제도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
신기술이 대중의 마음을 차지하는 데 필요한 건 무엇일까? 완전무결함? 신기함? 인공지능 사례를 보면 둘 다 아니다. 완전무결한 것만 대중화된다면 인공지능은 아직 사람들의 외면을 받아야 한다. 신기한 것이 그 요인이라면, 이세돌이 알파고에 졌을 때부터 각광받았어야 했다. 내가 보기에는 ‘궁합’이다. 간지러운 곳을 잘 찔러주는 기술이 대세가 되는데, 그게 지금은 인공지능인 것이다. 인공지능은 어떤 면에서 이 시대와 궁합이 잘 맞는 걸까?
NBC는 이미 작년 구글의 조사 결과를 인용해 인공지능으로 제작한 가짜 이미지가 급증하고 있다고 보도하며,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가짜 정보를 퍼트리고 싶어 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지적했었다. 인공지능이 만드는 가짜 콘텐츠가 얼마나 진짜 같은지, 그래서 얼마나 위험한지, 전문가들의 경고는 이미 수없이 나왔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개의치 않고 가짜를 만들어 가지고 놀고 퍼트린다. 모두가 각자의 정의와 진리를 가지고 살아가는 시대(my own version of truth)이기 때문이다.
각자의 정의와 진리가 극성을 부릴 때 어떤 일이 일어날까? 이코노미스트는 얼마 전 한 사례를 들며 기본적인 문법과 철자법까지도 ‘내 방식대로’ 고집하는 사람들이 생겨난다고 보도했다. 회사에서 보고서를 받은 한 상사가 직원에게 철자 오류를 지적했더니 ‘하지만 우리 집에서는 이렇게 쓰는데요’라는 대꾸가 나오더란다. 이러면 통용이며 공공의 약속 같은 게 의미가 없어진다. 질서의 중심을 잡는 건, ‘보편성 있는 무언가’가 아니라 ‘같은 생각을 가진 세력’이 된다. 중심의 진리가 없어진 자리에 ‘우리 편, 상대 편’이 생긴다는 것이다. 양극화다.
대부분 나라에서 양극화가 심각한 사회 현상이라는 건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여기에 매몰된 사람들은 내 편에 서 주기만 하면 진짜이든 가짜이든 상관없다고 한다. 그 결과, 시대가 거짓을 부추기게 된다. 지금까지의 인공지능은 ‘거짓을 진짜처럼 만들어주는 기술’로 요약이 가능한데, 그게 바로 최근 급격히 대세로 자리를 잡은 이유가 아닐까. 오히려 인공지능이 진실과 거짓을 올바로 규정하여 콘텐츠를 생성하게 되면 지금의 사용자들로부터 외면을 받을지도 모른다. “트럼프가 핵 공격 지지 연설하는 영상을 만들어줘”라고 했을 때 “거짓 생성은 불가합니다”라고 답한다면, 아무리 우회해도 그런 영상을 만들어낼 수 없다면, 인공지능 대신 프리미어 배울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렇다고 인공지능을 배척할 수는 없다. 이런저런 단점들은 다듬어지고 편리한 점들만 강화되는 미래가 우리에게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무엇이든 극단적이지 않으면 된다. 인공지능을 떠받들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생산력’에 힘을 주던 것에서, ‘검수력’으로 시선을 옮겨가야 한다. 인공지능을 쓰려면 인공지능이 만든 콘텐츠를 확인하고, 검사하고, 수정하고, 다듬는 후가공이 반드시 필요하다. 지금보다 더 똑똑해지거나(모든 걸 아는 사람이라면, 검수도 쉬워질 것이다), 더 부지런해져야(인공지능의 주장을 일일이 확인해야 하므로) 한다는 뜻이다. 인공지능, 마냥 편리하기 만한 건 아니라는 걸 받아들이는 게 먼저다.
동영상
해외 IT 매체 컴퓨터월드의 헤드라인에 ‘틱톡이 기업에 범람하고 있다’는 기사가 걸렸다. 자세히 보니 ‘틱톡과 같은 동영상들’이다. 심지어 ‘틱톡화(tiktok-ification)’라는 단어까지 등장했다. 무슨 사정인고 하니, 최근 직장인들이 업무 시 소통을 위해 영상을 많이 활용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간단한 업무 지시를 설마 영상 찍어가며 하겠나. 복잡한 인수인계나 새로운 스킬 습득 등 다소 머리 아플 수 있는 건들에 한해 문서 주고받는 대신 영상으로 콘텐츠를 만들어 전송한다고 한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났을까? 그 뿌리는 코로나인 듯하다. 코로나 때부터 원격 근무가 활성화 됐고, 원격 근무 활성화와 동시에 회의가 기업 문화 내에 깊이 파고들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하고 있어요’라고 주장하는 직원들을 관리하고, 회사 전체 생산성을 유지하기 위해 관리자들이 할 수 있는 게 각종 회의였으니, 그럴 만하다. 코로나가 지나가고, 근무 방식도 이전으로 돌아가고 있는데, 이 회의만큼은 사라지지 않았다. 끝없는 회의에 사람들은 질렸고, 그 회의를 대체할 수 있는 것으로 틱톡 같은 짧은 영상들이 시선을 사로잡은 것이다.
실제 이런 수요가 꽤 높은 것으로 보인다. 이미 기업 내 직원들 간 원활한 소통을 위한 간편 영상 제작 툴들이 나오고 있다고 하니 말이다. 상기 컴퓨터월드 기사에만 소개된 소프트웨어 및 회사가 아틀라시안, 구글, 신테시아, 룸 등 여러 개다. 대부분 인공지능이 영상 제작을 도와준다고 한다. 몇 가지 포인트만 짚어주고 프롬프트만 제대로 입력하면 영상이 나온단다. 회의 끝나고 정제된 회의록을 작성하는 것이나, 필요한 내용을 프롬프트에 입력해 영상으로 전환하는 것이나, 수고의 정량은 비슷할 것으로 예상된다.
필자처럼 텍스트 위주로 정보를 취하는 사람들에게는 공포스러운 소식이다. 유튜브와 같은 플랫폼에 넘쳐나는 각종 영상 정보들이 있음에도 굳이 텍스트로 정리된 정보를 찾아 읽어야 머리가 정리되는 부류들 말이다. 어느 날 (어딘가 취업해서) 출근했더니 각종 지시와 보고가 영상으로 올라온다면 어떨까? 처음에야 신기하겠지만, 몇 줄 서명을 위해 두세 시간씩 여러 영상들을 봐야 한다면, 적응하기 곤란하지 않을까.
게다가 영상에는 소통할 주 내용만이 아니라 부가적 정보들도 포함된다. 등장인물의 성별이나 표정, 억양, 문어체가 아니라 구어체로서 사용되는 언어의 패턴, 음성 등 아주 사소한 것들까지도 누군가에게는 중요한 정보가 된다. 셀카 잘못 찍어서 올린 한 테러범 때문에 은둔 기지 하나가 폭발한 사건, 피해자가 손가락으로 ‘브이’ 자를 그리며 사진을 찍었을 뿐인데 그 사진을 확대해 지문 정보를 갈무리했던 어떤 범죄자, 무심코 찍은 사무실 전경 사진에서 비밀번호 적힌 포스트잇을 발견한 해커 등이 머리를 스쳐간다. 우리의 영상 속에 정말 우리가 원하는 정보만 쏙 들어갈까? 문건과 회의를 통한 소통이 완벽하다 할 수는 없지만, 영상이 야기할 보안 문제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흐름을 어떻게 수용해야 할까? ‘우리 회사에서 영상 소통이 대세가 되지는 않을 거야’라고 믿으면 될까? 아니다. 여기서도 답은 위 인공지능에서와 같다. 극단적이지 않으면 된다. 영상만이 답이라거나, 영상은 결코 안 된다고 마음을 미리 먹는 게 제일 위험하다. 영상이 효과적인 소통 수단일 때도 있고, 글과 회의가 적절할 때가 있다. 둘을 합쳤을 때, 보다 풍부하고 안전한 소통이 이뤄질 수도 있다. 즉, 어떤 정보를 어떻게 전달해야 온전하고 안전해질까에 대한 본질적 고민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소통 매체(텍스트, 영상, 음성, 회의 등)를 선택하는 건 그다음이다.
기술들은 늘 우리 주위에서 자기가 간택받을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이걸 잊으면 안 된다. 간택하는 건 늘 우리여야 한다. 반대로 기술이 사람을 선택하는 순간 엉키기 시작한다. 기술이 사람을 선택한다는 건 다른 게 아니다. 문제 해결에 대한 본질적 고민을 하지 않고, 신기하고 새로운 기술을 맛보기 위해 문제를 만들어내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최고 성능 스마트폰이 굳이 필요하지 않지만 어떻게든 이유를 마련해 비싼 돈을 지불하고야 마는 것, 영어 공부 한다며 굳이 유료 영자 신문 여러 개 구독부터 하는 것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홍수처럼 밀려오는 신기술들 앞에서, 내 필요와 문제를 정교히 파악할 수 있는 능력부터 벼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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