값싼 소프트웨어의 나라 Part1
- 우리나라 소프트웨어 산업은 경제 규모 대비 어떠한가?
- 우리나라 소프트웨어는 값싸고 저렴하다?
-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면 고쳐야 하나 설명이 쉽지 않다.
- 꼬리를 물면서 강화되는 이슈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값싼 소프트웨어의 나라를 만드는 구조
소프트웨어 산업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공급사의 기술력, 인재 부족을 원인을 지목한다. 그러나 실제 현장에서 반복적으로 목격되는 현상은 조금 다르다. 한국은 좋은 소프트웨어를 만들지 못하는 나라가 아니다. 우리의 주변을 살펴보면 전 세계 최고 수준의 교육열과 전 세계 각종 경진대회에서 보여주는 성과, 데프콘 및 Pwn2Own에서 보여주는 우리나라 인재들의 실력이 떨어진다 할 수 있는가? 정확하게 본다면 우리나라는 소프트웨어가 비싸지기 어려운 구조를 가진 나라라고 해야한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단일 소프트웨어로 수십억 원 규모의 계약이 성립되는 반면, 우리나라 시장에서 이런 규모의 금액이 협상 테이블에 오르기 어렵다. 이와 같은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과거라면 이와 같은 차이를 단순히 시장 또는 경제 규모 그리고 경기 상황 설명하고 지나칠 수 있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의 위상을 고려할 때, 규모와 경기 상황으로 설명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
우리나라 소프트웨어 시장은 소프트웨어를 평가하고 구매하는 방식, 이를 둘러싼 제도와 관행, 그리고 가격을 바라보는 인식이 맞물리며 하나의 구조를 형성했다. Part 1에서는 한국에서 소프트웨어의 충분한 가치를 인정 받는 계약이 성립하기 어려운 이유를 가격 통계가 아닌 구조적 지표와 의사결정 방향을 통해 살펴본다. 왜 한국에서는 소프트웨어가 늘 ‘적정 가격’ 이하로 머무르게 되는지, 그 이유를 알아보고자 한다.
1. 왜 대한민국에서 수십억 원짜리 소프트웨어 계약이 성립하기 어려운가
해외 소프트웨어 시장에서 단일 애플리케이션 기준 연간 10~100만 달러, 다년 계약으로 100만 달러를 넘는 거래는 드물지 않다. 심지어 IT 인프라 수준이 한국보다 낮다고 평가받는 국가에서도 단일 소프트웨어로 200만 달러 규모의 계약이 성사된다. 이 수치들은 평균값을 의미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해당 금액이 협상 테이블 위에서 ‘논의 가능한 가격’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반면 한국 시장에서는 이와 유사한 규모의 단일 소프트웨어 계약을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문제를 직시하기 위해 ‘평균 소프트웨어 가격’을 확인할 수 있는 통계를 찾아봐도 이와 같은 정보를 접하기 어렵다. 다시 말해, “한국의 소프트웨어는 싸다”라는 주장은 직관적으로는 널리 공유되지만, 이를 단일 지표로 곧바로 증명하기는 어렵다는 뜻이다.
따라서 우리는 문제를 분석하기 위해서는 접근 방식을 달리해야 한다. 가격 그 자체가 아니라, 가격을 규정하고 제약하는 구조적 지표들을 통해 간접적으로 판단하는 방식이 필요하다. 이와 같은 간접 지표를 확인하다 보면 한국 소프트웨어 시장의 특수성은 명확히 드러난다.
첫 번째 지표는 가격 중심의 구매·입찰 구조다. 국내 공공 및 대기업 소프트웨어 도입 과정에서 기능 충족 여부가 기본 요건이다. 그러므로 요구사항을 충족하면 대부분의 제품이 같은 출발선에 선다. 사실 대부분의 제안사는 제안요청서의 기능 요구사항을 만족하기 위한 논리를 이미 준비하고 제안하기 때문에 제안사들은 같은 출발선에 선다. 그러므로 실제 평가의 변별력은 가격에서 발생한다. 이 구조에서는 더 높은 성능이나 확장성을 갖춘 소프트웨어보다, 동일한 기능을 더 저렴하게 제시한 제품이 합리적인 선택이 된다. 이는 곧 소프트웨어 가격이 상승하기 어려운 구조적 압력으로 작용한다.
두 번째 지표는 실적 중심 평가와 가격 명시 관행이다. 국내 입찰에서는 실적증명서나 실적확인서에 과거 계약 금액을 명시하도록 요구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이 금액은 이후 입찰에서 시장 가격의 기준선으로 작동한다. 가격은 참고값이 아니라 비교의 출발점이 되며, 한 번 낮아진 가격은 다시 올라가기 어렵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 소프트웨어의 평균 가격 수준은 점진적으로 하락하거나 정체될 수밖에 없다. 더구나 크지 않은 국가에서 친분등을 기반으로 입찰가격을 확인할 수 있는 현실을 반영한다면 가격 상승은 구조적으로 쉽지 않다.
세 번째 지표는 유지보수 요율이다. 유지보수 요율은 단순한 사후지원 비용이 아니라, 소프트웨어에 대해 시장이 허용하는 연간 가치의 크기를 보여주는 간접 지표다. 그러므로 이는 소프트웨어의 가치를 어떻게 평가하는지 판단할 수 있는 지표로 사용할 수 있다. 글로벌 엔터프라이즈 소프트웨어의 경우 유지보수 요율은 통상 연간 18~25% 수준에서 형성된다. 반면 한국에서는 명목 요율과 달리 실제 공급사에 귀속되는 유지보수 수익이 10% 미만, 경우에 따라 7% 이하로 떨어지는 사례도 적지 않다. 이는 한국 시장에서 소프트웨어가 장기적·지속적 가치의 관점에서 충분히 평가받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와 같은 현실이 가격으로 드러나는 것을 당연한 것이다.
네 번째 지표는 개발자 임금 구조다. 소프트웨어 가격은 결국 투입 인력의 비용 구조를 반영할 수밖에 없다. 한국에서는 소프트웨어 개발자 임금이 산업 평균임금 기준에 강하게 묶여 있으며, 한국인공지능소프트웨어산업협회가 발표하는 SW 기술자 평균임금은 참고 기준임에도 불구하고 실무에서는 사실상 상한선처럼 작동한다. 이 구조에서는 고급 인력을 장기간 투입해 고난도의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것이 어렵고, 이는 다시 소프트웨어 가격과 유지보수 요율이 낮게 형성되는 방향으로 되돌아온다.
이 네 가지 지표는 모두 하나의 사실을 가리킨다. 한국의 소프트웨어 가격이 낮다는 인식은 추정이나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가격을 낮게 만들 수밖에 없는 구조가 여러 간접 지표를 통해 일관되게 드러난 결과라는 점이다. 평균 가격이라는 단일 숫자가 없어도, 한국 소프트웨어 시장이 고가 계약을 지속적으로 만들어내기 어려운 이유는 충분히 설명된다. 이처럼 가격을 규정하는 구조적 지표들을 따라가다 보면, 결국 하나의 질문에 도달하게 된다. 왜 한국에서는 소프트웨어를 이처럼 비용 중심으로만 평가하게 되었는가. 다음 문단에서는 이러한 구조의 출발점이 된, 소프트웨어를 바라보는 인식의 문제를 본격적으로 살펴본다.
2. 가격 구조의 출발점: 소프트웨어를 ‘자산’으로 보려는 인식
앞선 문단에서 살펴본 가격 중심 입찰 구조, 실적 기반의 가격 고착화, 낮은 유지보수 요율, 개발자 임금 문제들은 우연히 형성된 결과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 구조를 만들어낸 이유는 한국 기업이 소프트웨어를 바라보는 인식에 있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소프트웨어가 비용 중심으로 평가되고 가격이 낮게 형성되는 현상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인식의 문제에서 비롯된 구조적 결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 기업 다수는 소프트웨어에 지급하는 비용을 ‘구매’를 위한 비용 지급으로 이해한다. 비용을 지급하면 소프트웨어는 기업의 자산이 되고, 이후에는 추가 비용을 들이지 않고 오래 사용하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여긴다. 이런 인식에서는 소프트웨어는 한 번 사두고 감가상각해야 할 대상이지, 가치를 창출하기 위한 지속적인 비용 투자 대상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그러나 소프트웨어는 하드웨어와 본질적으로 다르다. 하드웨어는 시간이 지날수록 노후화되지만, 소프트웨어는 업데이트와 기능 확장, 보안 강화에 따라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가치가 커질 수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 기업용 소프트웨어 계약이 구독(Subscription) 중심으로 전환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비용을 지불하는 대상은 코드의 소유권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개선되는 사용권과 그에 수반되는 가치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 차이는 회계 처리 방식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한국에서는 소프트웨어의 영구 라이선스(Perpetual License)를 자산으로 계상하고 감가상각 처리 가능하므로 선호하는 반면, 구독형 계약은 매년 비용으로 처리되기 때문에 부담으로 인식된다. 이로 따라 “매년 소프트웨어 비용을 지급하는 것이 과도하다”라는 인식이 자연스럽게 형성된다. 하지만 이러한 인식은 소프트웨어가 정적인 자산이라는 전제 위에서만 성립한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다시 가격 구조로 되돌아간다. 소프트웨어를 자산으로 인식하는 환경에서는 초기 도입 비용이 가장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되고, 유지보수나 업그레이드 비용은 가능한 한 낮춰야 할 대상이 된다. 이는 앞서 살펴본 낮은 유지보수 요율, 가격 중심 평가, 실적 가격 고착 구조로 이어진다. 결국 소프트웨어는 투자 대상이 아니라 원가 절감의 대상으로 자리 잡게 된다.
중요한 점은 이 인식이 공급사만의 문제도, 수요사만의 문제도 아니라는 것이다. 소프트웨어를 ‘산다’라는 사고방식이 유지되는 한, 고가의 소프트웨어 계약은 설득력을 갖기 어렵고, 장기적 가치에 기반한 투자 역시 구조적으로 제한될 수밖에 없다. 앞선 문단에서 드러난 가격 구조는 이와 같은 인식이 시장 전반에 걸쳐 누적된 결과다.
3. 투자라기보다 비용 통제로 작동하는 소프트웨어 의사결정
이전 두 문단에서 다룬 구조와 인식은, 기업의 의사결정 과정에서 드러난다. 결론부터 제시하자면 한국 기업에서 소프트웨어 구매 비용은 ‘미래 가치를 위한 투자’가 아닌 ‘통제해야 할 비용’으로 관리된다. 이와 같은 인식은 기업의 소프트웨어 도입 및 확산 과정에서 명확하게 드러난다.
기업의 소프트웨어 도입 과정에서 가장 강하게 작동하는 기준 중 하나는 ROI(Return on Investment)이다. 문제는 ROI가 장기적인 비즈니스 성과나 경쟁력 향상이 아닌 단지 비용만으로 계산된다는 점이다. 소프트웨어가 가져올 수 있는 생산성 향상, 의사결정 품질 개선, 위협 감소와 같은 가치는 고려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평가에서 거의 고려되지 않는다. 반면 도입 비용과 유지 비용은 명시적인 숫자로 제시되고 비교와 압박의 대상이 된다.
이러한 환경에서는 소프트웨어 도입을 하나의 ‘투자 프로젝트’로 바라보긴 대단히 어렵다. 오히려 구매 부서 중심의 조달 프로젝트로 관리된다. 기술 부서나 현업 부서가 필요성을 제기하더라도, 최종 결정 과정에서는 가격 경쟁력이 가장 중요한 판단 기준으로 작동한다. 결국 우리에게 “소프트웨어를 얼마나 저렴하게 도입될 수 있는가”가 “소프트웨어가 무엇을 해결해 주는가”보다 우선시되는 구조를 갖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구조는 공급사의 의사 결정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높은 가치(우수한 기능)와 높은 가격을 전제로 한 제안은 설득력을 갖기 어렵기 때문에, 공급사는 가격을 낮추고 범용적인 기능을 강조하는 전략을 채택한다. 그 결과 시장에는 기술적으로 도전적인 제품보다는, 요구사항을 최소 비용으로 충족시키는 제품이 살아남는다. 이는 다시 소프트웨어의 평균 가격과 평균 품질을 동시에 낮추는 방향으로 작용한다.
또 하나의 중요한 특징은 실패 회피 중심의 투자 문화다. 소프트웨어 도입 결과에 의한 성공은 조직 전체에 분산되어 나타난다. 하지만 소프트웨어 도입 실패는 즉시 비용 낭비로 드러난다. 성공의 요인이 가치 있는 소프트웨어 도입으로 인한 것인지 드러나지 않는다면 의사결정자는 고가의 소프트웨어를 선택할 이유를 찾기 어렵다. 그러므로 의사결정권자는 소프트웨어 도입 비용의 최소화가 개인의 책임 회피 측면에서 합리적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결국 다시 한번 소프트웨어 가격을 낮추는 방향성을 갖게 된다.
결과적으로 한국 기업의 소프트웨어 투자는 가치를 키우는 투자라기보다, 비용을 통제하는 관리 행위에 가깝다. 이는 앞서 살펴본 가격 중심 구조, 자산 중심 인식과 맞물려 소프트웨어를 지속적으로 저가 영역에 묶어두는 역할을 한다. 즉, “값싼 소프트웨어의 나라”는 감정적인 표현이 아닌, 앞서 언급한 의사 결정의 반복이 만들어낸 결과를 표현한 것이다.
이처럼 소프트웨어가 비용 통제의 대상으로만 인식되는 환경에서는, 공급사 역시 장기적인 기술 투자와 가치 제안에 나서기 어렵다. 다음 문단에서는 이러한 구조 속에서 소프트웨어 공급사가 어떤 한계와 선택지에 직면하게 되는지, 그리고 ‘제값 받기’가 왜 쉽지 않은지를 살펴본다. 🆃🆃🅔
Part2에 이어서... (To be published on Feb 10,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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