값싼 소프트웨어의 나라 Part2

값싼 소프트웨어의 나라 Part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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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Pick
- 우리나라 소프트웨어 산업은 경제 규모 대비 어떠한가?
- 우리나라 소프트웨어는 값싸고 저렴하다?
-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면 고쳐야 하나 설명이 쉽지 않다.
- 꼬리를 물면서 강화되는 이슈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구조 속에서 선택지를 잃어버린 공급사, 그리고 다음 질문

Part 1에서 살펴본 구조는 "소프트웨어 공급사는 어떤 위치에 놓여 있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값싼 소프트웨어의 나라라는 결과는 수요자의 선택만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며 공급사 역시 구조적으로 선택을 강요받는 환경 속에서 형성된 결과이다.

Part 2에서는 ‘소프트웨어 제값 받기’라는 오래된 화두를 Part1에서 언급한 구조적 한계의 관점에서 바라본다. 공급사가 왜 장기적인 기술 투자와 가치 중심 제안이 어려운지, 그리고 개별 기업의 역량 문제가 아닌 시장 전체의 조건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살펴본다. 마지막으로 이 순환 구조를 끊기 위해 무엇을 먼저 바꿔야 하는지, 대한민국이라는 작은 시장의 현실을 고려한 정책, 시장, 기업 레벨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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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제값을 못 받는’ 것이 아니라, 제값을 설계할 수 없는 공급사의 위치

앞선 문단들에서 다룬 내용은 대부분 구매자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시점에 소프트웨어 산업의 반대편에 있는 공급자를 떠올리면 “소프트웨어 공급사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라는 질문이 떠오른다. 이 질문의 연장선에 있는 것이 소프트웨어 제값 받기라 할 수 있다. 소프트웨어 제값 받기에 관한 논의를 이어가다 보면 종종 문제의 원인이 공급사의 역량이나 태도에 관한 내용으로 흐르기도 한다. 물론 공급사에 관한 논의가 필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의 소프트웨어 산업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먼저 분명히 해야 할 점은, 소프트웨어 공급사가 ‘제값을 받지 못하는 것’과 ‘제값을 받을 수 없는 구조에 놓여 있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는 사실이다. 앞선 문단에서 살펴본 가격 중심 구매 구조, 자산 중심 인식, 비용 통제 중심의 판단은 모두 공급사가 가격을 설계하고 설명할 가능성을 구조적으로 어렵게 한다. 이런 환경에서 ‘제값을 받기 위한 노력’은 의지의 문제가 아닌 전제 조건의 문제에 가깝다.

기술 경쟁력 측면에서도 마찬가지다. 흔히 국내 소프트웨어가 글로벌 대비 기술력이 부족하다는 평가가 있지만, 이는 결과에 대한 설명일 뿐 원인에 대한 설명은 아니다. 수준 높은 소프트웨어를 만들기 위해 장기간의 연구개발 투자와 고급 인력 확보는 필수이다. 그러나 낮은 유지보수 요율, 개발자 임금 상한, 가격 하방 고착 구조 속에 투자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즉, 기술 경쟁력의 한계는 공급사의 선택이 아니라 투자 불가능성의 결과로 보는 편이 타당하다.

이런 구조는 공급사의 가치 제안 방식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상적인 소프트웨어 제안은 기능 나열이 아닌, 소프트웨어가 고객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고 어떤 가치를 만드는지 설명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시장에서 가치를 강조한 제안은 가격 압박 환경 아래 쉽게 무력화된다. 평가 기준이 기능 충족과 가격에 집중되어 고도화된 가치 제안은 설득의 무기가 아니라 협상 리스크로 되돌아오기 때문이다. 산업 구조적 문제로 회사가 지속적인 투자를 이어갈 수 없으며 기업 존폐 상황이 눈앞에 펼쳐지면, 결국 공급사는 문제 해결 중심의 제안보다 요구사항을 최소 비용으로 충족시키는 방향으로 전략을 조정하고 수주에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다. 결국 다시 가격의 하방 구조에 끌려드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소프트웨어 제값 받기”는 현실과 괴리를 보이게 된다. 제값을 받기 위해서는 먼저 제값이 무엇인지 정의할 수 있어야 하고, 그 정의가 시장에서 받아들여질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현 구조에서 소프트웨어의 도입이 가져오는 장기적 성과와 지속적 개선이 가져다줄 가치에 관해 설명할 수 없다. 가격은 이미 과거 실적과 예산 기준에 의해 정해져 있고, 공급사는 그 범위 안에서 움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나라 소프트웨어 공급사는 두 가지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하나는 구조에 맞춰 가격을 낮추고 범용적인 기능 중심의 제품을 공급하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시장에서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가치를 설명하며 장기적인 리스크를 감수하는 길이다. 많은 공급사가 전자를 선택하는 것은 경쟁력 부족 때문이 아니라, 현재의 시장 구조에서 가장 합리적인 생존 전략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이 이와 같은 상황에 처한다면 어떤 선택을 하겠는가? 과연 가치 강조하며 충분한 가격을 받기 위한 제안을 이어가겠는가?

결국 “제값 받기”는 공급사만의 과제가 아니다. 이전 문단에서 살펴본 소프트웨어에 대한 인식, 기업의 투자 방식, 가격 중심 의사결정 구조가 함께 바뀌지 않는다면 실현되기 어렵다. 이런 공급사의 현실은 우리나라 소프트웨어 산업 구조가 어디까지 허용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에 가깝다.

지금까지 살펴본 내용처럼 소프트웨어 시장의 문제가 공급사의 한계, 개인기업의 역량 문제가 아닌 구조적인 문제라면, 질문을 바꿔야 한다. 이 구조를 유지한 채로 한국 소프트웨어 산업의 경쟁력을 기대할 수 있는가. 다음 문단에서는 이 순환 구조를 끊기 위해 무엇이 선행되어야 하는지를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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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값싼 소프트웨어의 나라는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그럼, 무엇이 먼저 바뀌어야 하는가

지금까지 살펴본 우리나라 소프트웨어 산업의 모습은 개별 주체의 선택이 아닌 순환 구조가 반복적으로 강화된 결과에 가깝다. 가격이 낮게 형성될 수밖에 없는 계약 구조(1)는 소프트웨어를 자산이 아닌 비용으로 바라보는 인식(2)과 결합되고, 이는 기업의 소프트웨어에 대한 투자 판단을 비용 통제 중심으로 바라보며 고착화된다(3). 그 결과 공급사는 장기적인 기술 투자나 고가의 가치 제안을 설계하기 어려운 위치에 놓이게 된다(4).

이 순환은 특정 지점에서 시작했다고 보기 어려우며 각 단계가 서로를 정당화하며 강화되는 구조로 작동했다. 가격이 낮으니, 투자를 줄이고, 투자가 줄어드니 기술 경쟁력이 약해지며, 기술 경쟁력이 약하다는 인식은 다시 가격 인하를 정당화한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서 “소프트웨어 구매 비용을 줄여 저렴하게 구매한다.”라는 인식은 현실이 되었고, 동시에 그 현실을 바꾸기 어려운 조건이 되었다.

중요한 점은, 이 구조가 대한민국 시장의 규모가 작으므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시장과 경제 규모가 우리나라보다 작거나 비슷한 국가들도, 소프트웨어에 대해 충분한 비용을 지급하고 장기적인 가치를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규모가 아닌, 어떤 기준으로 소프트웨어의 가치를 판단해 왔는가에 있다.

현실적 전환 지점

순환 구조를 단숨에 끊는 해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어차피 순환 구조라면 순서와에 관계 없이 그 고리를 끊는 방안이 필요하다. 우리나라 시장 규모와 특성을 고려할 때, 변화는 정책 → 시장 → 기업의 순서로 단계적으로 일어나는 것이 현실적이다. 더구나 정부 기반의 투자가 가장 많으며 파급력이 큰 상황이므로 위 순서가 효과적일 것이다.

정책 레벨: “가격 통제”가 아닌 “가치 설명”이 가능한 제도 설계

우리나라 소프트웨어 시장에서 정책과 제도의 영향력은 매우 크다. 특히 공공 부문은 단순한 수요자가 아니라 시장 기준을 설정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첫 번째 변화는 가격을 직접 올리려는 시도가 아니라, 가격을 설명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어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기능 충족 여부 중심의 평가에서 벗어나, 성능, 확장성, 운영 안정성, 보안 대응 능력 등 장기적 가치 요소를 평가 항목으로 명시할 필요가 있다. 이는 단기간에 모든 사업에 적용되기보다는, 일부 고난도·고위험 영역부터 점진적으로 도입하는 방식이 현실적이다.

미국과 독일 등의 국가는 모든 소프트웨어를 고가로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중요도가 높은 영역에서 가격보다 리스크와 성능을 우선 평가한다. 한국 역시 시장 규모의 한계를 이유로 일률적 저가 구조를 유지하기보다, 가치 기반 평가가 필요한 영역을 선별적으로 설정할 필요가 있다.

시장 레벨: 작은 시장일수록 ‘선택과 집중’ 필요

우리나라는 글로벌 기준 결코 큰 소프트웨어 시장이 아니다. 이 점은 오히려 전략적으로 활용될 수 있다. 모든 소프트웨어를 글로벌 수준의 가격으로 거래하려 하기보다, 가치를 인정할 영역과 그렇지 않은 영역을 구분하는 것도 적절하다.

예를 들어, 운영 중단 시 기업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핵심 시스템, 보안, 데이터, 의사결정 자동화와 같이 대체 비용이 큰 영역에서는 가격보다 안정성과 전문성에 우선순위를 두는 것이다. 반면 범용적인 기능 위주의 소프트웨어는 여전히 가격 경쟁이 이루어질 수 있다. 문제는 지금까지 이 구분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런 선택적 접근은 인도나 브라질과 같은 개발도상국에서도 확인된다. 이들은 모든 소프트웨어에 높은 비용을 지급하지는 않으나, 자국 산업이나 핵심 인프라와 직결된 영역에서는 글로벌 수준의 계약을 주저하지 않는다. 우리 역시 ‘모든 것을 저렴하게’가 아닌, ‘중요한 것은 반드시 제대로’라는 기준을 세울 필요가 있다.

기업 레벨: 비용 관리에서 가치 책임으로

마지막 변화 지점은 기업의 의사결정 방식이다. 소프트웨어를 비용으로 관리하여 투자 실패의 책임은 회피할 수 있으나 성공의 과실 역시 제한적이다. 소프트웨어를 가치 창출의 수단으로 선택하는 순간, 기업은 소프트웨어 선택에 대한 책임과 설명 의무를 함께 부여 =받는다. 모든 기업이 고가의 소프트웨어를 도입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왜 이 소프트웨어에 이 비용을 지급하는지 설명할 수 있는지 설명할 수 있으며 이를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설명이 가능하다면, 가격은 더 이상 협상의 결과가 아니라 전략적 선택의 일부로 바뀐다. 글로벌 시장에서 고가의 소프트웨어 계약이 가능한 이유는, 그 가격이 정당하다고 합의된 결과이기 때문이다.


a person standing on a sidewalk with the words life start painted on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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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 우리나라 소프트웨어 시장의 변화를 위해

“값싼 소프트웨어의 나라”라는 표현은 단지 우리나라 소프트웨어 산업의 문제를 지적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이같은 표현은 어떤 선택들이 누적되어 만들어진 구조를 요약한 것에 가깝다. 이런 구조를 바꾸는 것은 단기간에 어려우며, 때론 불편한 논쟁을 동반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최소 “가격의 하방 구조가 만들어지는 순환 고리”가 문제라는 점을 인식하고 우리는 소프트웨어를 계속 비용으로만 관리할 것인가, 아니면 책임을 지고 투자할 대상로 받아들일 것인가를 고민하고 변화를 만든다면 우리의 소프트웨어 산업의 가격도, 가치도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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