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머묾] 보안은 즐겁다 2

[TE머묾] 보안은 즐겁다 2
Photo by Alessandro Maculotti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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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Pick
- 동계올림픽 사상 첫 설상 금메달의 감동
- 전기자동차, 박해 속에서 살아남을 방법 모색
- 보안도 생존의 분야...그래서 더 좋아

동계올림픽 설상 종목서 한국 최초 금메달이 나왔다. ‘최초 금메달’이라는 타이틀 자체도 충분히 극적인데, 17세 최가온 선수가 거기까지 도달하는 순탄치 않은 과정이 스포츠 특유의 드라마까지 더했다. 악천후 속 넘어지고 뒹굴면서도 끝까지 일어난 최 선수는 부상 때문에 잠시 기권까지 생각했지만, 이왕 여기까지 온 거 마지막 기회를 살려보자 마음을 고쳤다. 그렇게 주어진 단 한 번의 기회서 모든 연기를 성공시키며 끝내 자신의 우상까지 넘어섰다. 이 설명만 들어도 우리는 그 새벽에 일어나지 못한 걸 안타까워 하거나, 마침 그 때 깨어 있던 걸 자랑스러워 하기 충분하다. 

스포츠라는 드라마

스포츠에서 말하는 '드라마'가 늘 순위나 메달과 연결돼 있는 건 아니다. 1988년 캘거리 동계올림픽에 출전한 '독수리 에디'가 좋은 예다. 그는 스키점프서 최하위를 기록한 선수였으나, 성적과 상관없이 해당 대회를 대표하는 스타로 떠올랐다. 스키점프 인프라가 전혀 없는 나라에서 아무런 지원도 못받고, 심지어 다른 나라 선수들의 중고 장비를 빌려가며 독학으로 훈련한 그의 사정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그의 비행에 모자랐던 세련미를 그 누구도 거슬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폐회식 연설에 직접 언급되기까지 한 그를 카메라가 잡아줬을 때, 경기장 내 모든 사람들이 그의 이름을 연호하기도 했었다.

'버티어 살아남는다'는 것 자체가 주는 원초적 감동이 어쩌면 우리가 스포츠 경기에서 찾는 드라마일 것이다. 생존 자체가 점점 버거워질 뿐더러, 누군가의 위에 올라서야만 생존에 성공한 것처럼 여겨지는 때에 이런 자극은, '도파민 중독'으로 묘사되는 이 시대에 점점 귀해진다. 다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은 조금 다른 얘기다. 먹고 살아야 하지 않겠냐며 포주가 되거나 범죄단체를 꾸린다면, 감동은커녕 사회 전체에 민폐를 끼치게 된다. 최가온 선수에게 '끝까지 살아줘서 고맙다'고 느낀다면, 우리는 그런 범죄자들에게는 '제발 그만 생존해줘'라고 말하고 싶어진다.

뜨거운 스포츠 현장과 사뭇 다른, 차갑고 냉정한 업계에서도 요즘 단내가 나려 한다. 그리고 그것이 묘하게 스포츠 드라마와 겹쳐 보인다. 생존본능이 노골적으로 발휘되고 있기 때문이다. 전기자동차 산업의 이야기다. 트럼프라는 지구 최대 권력자에게 단단히 미운털 박힌 이 분야는, 그 단 한 사람 때문에 발칵 뒤집어지는 중이다. 이 과정에서 유수의 기업들이 넘어지고 수많은 사람들의 생계마저 막히고 있는데, 뾰족한 대책이 없다. 어떻게든 버티고 생존하는 것만이 답으로 보이는 상황이다.

전기차 업계의 생존 전략

지구온난화나 이상 기후를 ‘음모론’이라고 주장하는 트럼프는 임기 초반부터 전기자동차를 겨냥했다. 각종 정부 지원금과 프로그램을 축소시키거나 없앴다. 그러자 전기자동차 구매율이 툭 떨어졌다. 이 분야 ‘고정 1위’로 여겨졌던 테슬라는 저조한 판매 실적 때문에 2위로 하락했다. 빈 왕좌를 ‘저가형 전기자동차’ 업체 BYD가 꿰찼다. 자국 기업 보호를 목놓아 외치던 그가, 오히려 중국 기업을 도운 꼴이 됐다. 참고로 BYD는 중국 정부의 어마어마한 보조금 덕에 저렴한 상품을 내놓는 기업이다. 테슬라와 정 반대의 환경 속에서 경쟁한다는 의미.

트럼프는 잘 나가던 테슬라를 주춤하게 만든 것만이 아니다. 처음부터 부진했던 자국 기업들에는 더 큰 좌절을 선사했다. 내연기관 강자 포드가 그 당사자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기업들이 전기차 분야에서는 천문학적인 적자만 기록 중이며, 이 과정에서 야심차게 지어올린 공장을 어쩔 수 없이 놀리고 있기도 하다. 공장을 놀리는 것만으로도 매일 손해가 누적된다. 당연히 공장 근무자 수천~수만 명도 앞날을 보장 받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새로운 시장이 생겨나고 있고, 그것을 이들 실패한 자동차 기업들이 포착했다는 것이다. 바로 ‘에너지 저장 장치’다. 인공지능과 이상 기후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에너지를 안정적으로 저장했다가 쓸 필요’가 세계 곳곳에서 급증하고 있고, 이 흐름에 맞춰 ‘대형 배터리’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는 중이다. 전기차 생산 공정 중 ‘배터리 생산’이 포함돼 있기에, 기존 생산 시설만 조금(?) 손보면 더 큰 배터리도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자동차 기업들은 희망하고 있다.

실제로 테슬라는 차량 배터리를 제작하던 노하우를 살려 에너지 저장 장치용 배터리를 양산해 제공하기 시작했고, 이 사업이 얼마나 괜찮았는지 전기차 판매 저조로 인한 손해를 메우고도 남았단다. 한국의 LG엔솔과 SK온 등도 해당 분야에서 높은 실적을 기록했다. 인공지능을 가동시키기 위한 대형 데이터센터들로부터 ‘대형 배터리’ 주문이 끊이지 않고 있다고 하며, 이런 데이터센터들이 증가하고 있기 때문에 당분간 전망이 밝다. 이 흐름에 포드나 GM 등이 안착할 수 있다면 공장 마비로 실직자가 된 사람들도 다시 일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엇나간 리더의 영향이 아랫단에 위치한 자들의 생존본능으로 상쇄되는 걸 목도하는 건 때론 감동적이다. 거대해 보이는 ‘이념’이나 ‘권력’이라는 것이, 키 작은 들풀의 생명력에 견주지 못한다는 사실이 새삼 확인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아, 물론 그들의 신규 사업으로의 전환 시도가 성공할 것이라고 장담할 수는 없다. 아직 한참 연구와 조사를 진행하고 있을 것이고, 실제 뭔가 구체화 되는 건 빨라야 몇 개월 후에나 가능할 것이다. 그럼에도 ‘포기’라는 쉬운 선택지를 누군가는 부지런히 ‘희망’이라는 난이도 높은 것으로 대체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고무적이다.

솔로몬이 입은 화려한 옷보다 들에 핀 풀꽃이 아름답다 했다. 의지라곤 전혀 없이 휘적휘적 아래 방향으로 떨어지는 왕의 옷가지가, 하늘 방향으로 스스로를 지탱하는 줄기보다 귀할 수 없다. 결국 높은 곳을 향하게 하는 건 짓누르는 손이 아니라 지면을 박차는 발이다. 기업을 찬양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모두의 안에 있는 생존본능을, 본능처럼 응원하게 될 뿐이다.

그리고 보안

내가 정보 보안이라는 분야를 바라보는 시각이, 어쩌면 드라마를 찾아 스포츠 채널을 헤매고, 전기차 기업들의 소식을 파고드는 것과 같은 결이라는 생각이 든다. 보안은 십수년 간과 되고 무시 당하기를 반복하지만, 어떻게든 생존하고 있다. 사고 사례들을 꾸준히 재료 삼아 교육하고, 스토리텔링 기법을 이리저리 바꿔가며 설득하고, 때론 침묵하며 자기 자리에서 할 일을 하고, 자기들끼리 모여 연구해 발표하는 등 빛도 없이 이름도 없이 책임을 다하면서 말이다. 

작년 한 해 대형 보안 사고들이 한국에서 연이어 터지면서 주목도가 잠시 올랐을 때, 이 순수한 보안 전문가들은 '지금이 보안을 알릴 기회'라고 좋아했다. 하지만 열기는 금방 식었고, 잠시 올랐던 보안주는 빠르게 제자리를 찾고 있다. 작년 11만 6천원이 넘었던 안랩 주가는 지난 1월 기준 6만 5천원이 됐다. 보안은 반짝 스타가 되는 듯했지만 다시 생존 본능을 발휘해야 할 때로 회귀 중이다. 익숙한 분위기다.

자포자기도 아니고 안타까운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끝까지 보안을 몰라주는 일반 대중들이 원망스러운 것도 아니다. 보안은 명맥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빛나는 분야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외부의 인식에 개의치 않는 법을 오래 전에 익혔을 뿐이다. 꼭 금메달을 따야만 의미가 있는 게 아니라는 건 이미 88년도에 모두가 배웠다. 2026년 현재 ‘보안은 너무 중요하다’고 이미 누구나 말하는 게 어딘가. 인정은 충분히 받고 있다.

정말 중요한 건 숨어 있더라도 불거진다. 아무리 무시와 간과가 억누르려 해도, 꼿꼿이 새어나오기 마련이다. 보안의 가치는 그런 속성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게다가 ‘나 좀 봐달라’고 외쳐서 돌아봐주는 것보다, 은은한 낭중지추가 더 멋지지 않은가. 그런 주머니 속 송곳이 되는 것, 모두의 낭만이지 않은가. 보안이 조용하고 은은한 인정을 받는다는 건 그 분야에 꾸준히 몸 담고 있을 때 그 어려운 ‘나는 가만히 있는데 이성들이 자꾸만 와서 아는 척하고 전화번호를 주려 한다’ 류의 낭만이 실현될 수 있다는 뜻이다. 젊은 날 캠퍼스에서 이뤄보지 못한 꿈이 있다면, 걱정하지 말라, 여기에 두 번째 청춘이 있다. 보안이 즐거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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